내가 쓴 글

사십대 여자의 변신

방울꽃 2007. 2. 6. 22:00
 한 해 전에는 아이들 때문에 망설였었는데, 일 년 자란 아이들을 떼어 두고 나오는 홀가분함 보다 사십의 나이에 나서는 세상이 두렵기만 했다. 가정 안의 작은 울타리 생활을 벗어나 사회로 나선다는 게 사십이나 먹은 나이와는 무관 하구나. 공부 마치고 세상에 나서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이랬을까 전날에는 집안일 두루 챙기고도 마음이 안 놓이고, 옷 곱게 다려서 두고 또 보고, 설레임으로 일찌감치 일어나 서성였던 그 날...

 혼자 일하는 것이 두려워 친구가 있는 부서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떼를 써 보고, 이미 결정이 되었으니 안된다는 말이 매정하기만 들렸었다. 업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십대, 이십대, 삼십대와 같이 사십대인 내가 같이 일해야 하는 두려움이 더 컸을지 모른다. 잘못해서 그들에게 무안당하지나 않을까, 톡톡 튀는 그들과 나의 견해들이 어긋나지는 않을까 등...그런 두려움으로 시작한 일은 지역사회에서 지역민 컴맹 탈출을 위한 컴퓨터 교육장의 보조 강사로 일한다. 나이 드신 분들과 컴퓨터를 처음 배우는 이들이 많아서 옆에서 지도해 줄 업무다. 세월이 약 이련가 시간은 하루하루를 익숙해지게 한다. 우선은 모르는 걸 젊은 동료들에 다가가서 정중하게 물었다. 두려움의 대상인 젊은 친구들은 상냥하게 잘 알려주었고, 즐겁게 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젊은 친구들보다는 나이든 내가 어른들과 편하게 가까워지고 허물없이 묻고 지도하게 되었다. 시장에서 마주치면 새침 떼기 같았던 젊은 엄마도 마주치면 나보다 먼저 인사를 했고, 나이 드신 분들도 내 고개보다 더 숙여 인사를 해주시니 이것도 자신에게는 새로운 모습이다.

 나이 사십이면 인생의 쓴맛 단맛을 맛본다했던가. 내가 맛본 쓴맛은 내 안의 작을 것들을 꺼내어 놓게 하고, 이는 전환점이 되어 내 모습을 확 바꾸게 한다. 심심풀이의 일이 아닌 직업을 얻어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상에 산다. 사십 중반을 폴짝 넘긴 지금에는 초반의 업무보조며 계약직인 일들을 했던 거와는 달리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있으니 이도 큰 변신이다.

 지식이란 것이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기도 하고 알아가노라면 흥미를 얻기도 하지만 하얀 머리 하나씩 삐죽이 나오는 두뇌로 국문학에 빠져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용을 헤치다 보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학문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고, 때론 어렵기만 한 것이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중간 중간의 시험은 혹독한 채찍을 가하는 것이 매섭기만 하다. 그로 인해 버겁게 오르고 보면 커다란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는 행복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내가 교육을 하고, 어느 때는 내가 학생이 되어 있는 자리에서, 음악 골라 듣던 여유는 언제였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 귀에는 강의 내용과 소설책 읽던 손에는 교과서가 들려있고, 지치지 않을 만큼 일하겠다던 생각은 승용차 뒷좌석이 아닌 버스 안에서 조는 모습으로 변해 있으니 엄청스리 우아한 척 하던 나의 또 다른 변신이다.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내가 그들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채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한 주쯤 주말을 그들에게 기꺼이 봉사할 모습도 있다. 연일 긴 시간 특강으로 목이 아플 만큼의 열정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은 내 배에 맛있는 음식을 과하게 채워주었으니 힘이 들었던 육신보다는 마음으로 더 행복해하고 뿌듯해하는 모습도 있다,

 비록 칠면조 같은 화려한 변신은 아니더라도 매년 조금씩 변신 해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에게 신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