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

한시의 그늘에 서서/물의 베개

방울꽃 2005. 12. 1. 11:59
金沙居士枕流亭 금사 거사의 침류정이여
楊柳陰陰暑氣晴 버들 그늘이 깊어 더운 기운을 맑게 하네.
洗耳不聞塵世事 세상일은 귀를 씻고 듣지 않나니
潺湲只有小溪聲 졸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물 소리뿐.
-염흥방(廉興邦), <題枕流亭>


귀양가 있던 염흥방이 침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서 그 운치를 읊은 시입니다. '침류(枕流)'란 물을 베개한다는 뜻이니 그 표현이 매우 시적입니다. 흐르는 물은 베개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표현은 본래 수류침석(漱流枕石)이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진(晉)나라에 손초란 이가 은거할 뜻이 있어 '돌을 베개하고 물로써 씻는다(枕石漱流)'라고 해야 할 것을 '돌로 씻고 물을 베개한다(漱石枕流)'라고 잘못 말하고서, 수석(漱石)은 이를 갈기 위함이요 침류(枕流)는 귀를 씻기 위함이라고 둘러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가 실수로 말을 잘못하여서 생긴 표현이었지만, '물을 베개한다'는 표현은 매우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정자 이름을 침류라 지은 염흥방도 이 단어의 시적인 울림을 좋아했기에 이런 이름을 부쳤을 것입니다.

염흥방은 정자를 짓고 이색에게 기문(記文)을 구했는데, 그 글에 "나(이색)는 일찍이 들이니 천지 사이에 물이 제일 큰 까닭에 땅이 물 위에 있어 물에게 실려 있는 즉, 무릇 형색이 있는 것으로서 천지 사이에 생하고 모이는 것은 모두 물을 베개하고 있으니 어찌 유독 사람뿐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물을 베개한다!' 이색은 고려말을 울린 대시인답게 시적인 말의 음계(音階)로써 침류의 뜻을 깊은 울림으로 확장시켰습니다. 대지는 바다에 떠 있으니 수억만 년이나 물을 베개한 것이요, 그 위에서 살아가는 뭍 생물 또한 물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우리는 모두 생의 텃밭에서 물을 베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시인은 "하늘이 첫째로 물을 낳아 오행의 첫머리를 만들었으니, 만물이 번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물의 공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물의 깊은 뜻을 알았기에 물을 베고서 물소리를 깊이 깊이 듣고 싶었나 봅니다. 더위를 옆으로 살짝 밀쳐놓는 버들의 푸른 그늘 깊이 드리운 정자 속에서 귀를 씻고서 세상 시비일랑은 잊어버립니다. 졸졸거리며 맑게 흘러가는 작은 시냇물 소리만 들려옵니다. 물의 화소(話素)가 피어 올리는 투명한 소리의 베개는 수천만 년의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미적 구조는 늘 새롭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생의 눈썹 위를 쉼 없이 흐르는 '머무는 바 없는 마음' 때문은 아니겠는지요. 그대여 그 소리의 마음을 베고서 그 곁에 삶의 숱한 이야기들을 가만히 누여보고 싶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