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비워야 하는 것을

방울꽃 2005. 12. 1. 22:38
비워야 하는 것을/전 형철



버려야 할 것을 모른다

시간은 겨울을 끌어당겨

넉넉히 품에 안고

노을보다 아름답던 숲을 버린 채

불 타는 가지를 바람에 내맡겨도

나는 인생에서 버려야 할 것을

마흔이 된 지금에도 모르고 있다

푸름을 흩어내고 잔설(孱雪)이

이끼처럼 뿌리 내린 암봉巖峰에는

햇살마져 빛 숨기고 돌아서 가는데

나는 비워야 할 것을 여태 모르고 있다

바람에 기대어

빈 숲을 덮어 버린

눈꽃을 핑계 삼아

숨어 울던 그림자 동여매고

고운님 떠나시는 등뒤에

먼 길을 이제야 오시는 듯.

반겨 날아 오르는

까막까치 속 없는 웃음처럼

애써 비운 자리마져

다시 가슴에 채우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