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채석장에서
방울꽃
2005. 12. 3. 22:31
채석장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모두 절망이 아니다.
무너진 세월의 아픈 흔적을 따라
사람들이 떠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다시 망치질을 한다.
빈틈없는 하루의 시간들을 힘껏 내리치면서
흩어지는 일상을 바라보면
무너지면서 더 단단해지는 것이 있다.
채석장 구석마다 몰래 피어나는
일년초 풀잎에 숨어 그러나
가슴 두근거리던 허약한 그 밖의 날들은
가을 한나절 내가 내리치던 또 하나의
세상 속으로
쉽게 무너지지 못했지
돌아보면 흩어져 보이지 않던 많은 시간들
떠나간 사람들의 안부는
흙먼지 피어올라 더욱 희미해지고
남아있는 것들
저마다 단단한 돌 하나
가슴속으로 키워 가는 채석장의 오후
벗은 산허리를 베고 저녁 해가 진다.
어둠에 몸 젖는 사람들
사람들은 다시 흩어지고
흩어지며 맨살에 끊임없이 와 닿은 소리
마침내 그 속에 무거워진 생각 함께
무너져 내리던
부딪쳐 소리 지르는 돌의 함성
나는 날마다 또 히나의 세상 속으로
힘차게 망치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