鷄蟲得失雲千變 작은 이해·득실은 구름처럼 천 번을 번하거니 風火生涯夢一般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인생은 꿈과 매일반이라. 杳杳獨尋山路去 아득히 홀로 산 길을 가노라면 滿衣秋葉石床寒 옷에는 가을잎 가득하고 돌 침상은 서늘하겠지…! -박순(朴淳), <送友人歸懸燈山 현등산으로 돌아가는 벗을 보내며> 그대여 이 시는 가을빛을 타고서 산 속으로 홀로 떠나는 벗을 보내는 작별의 시입니다. 작별의 시가 의례 그렇듯, 이 시 속에는 이별의 서운함을 나붓나붓 쓸어서 '글자의 속살' 속에 심어둔 아쉬움의 은근한 여운이 고이 배어 있는 듯 합니다. 닭이 벌레를 쪼아먹고 또 사람이 그 닭을 잡아먹듯, 작은 이해· 득실을 일러 '계충(鷄蟲)'이라 합니다. 서로 그렇게 먹고 먹히는 작은 이해· 득실의 세상, 정처 없는 구름처럼 천 번 만 번 변화여 정녕 속내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사, 그 고단한 세상의 손바닥 위에서, 우리네 삶이란 바람 앞에 등불이요, 한낱 부질없는 짧은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풍진(風塵)의 세상이 싫어서 나의 벗은 산 속 깊은 곳으로 홀로 떠나갑니다. 벗이 떠나갈 곳을 아득히 그리는 그의 심정에는 서늘한 가을빛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떠나는 벗의 발걸음 속에는, 벗을 홀로 보내야만 하는 시인의 아쉬움과 그리움의 그림자가 가을빛과 같이 담겨서 가만히 그의 길을 함께 따라 갔을 것입니다. 단풍 속에다 가만히 눈빛을 내려놓고서 고이 침묵에 잠겨 있을 가을 산길을 홀로 깨우며 갈 벗! 가을 산길이 삼켜버린 그 벗의 옷에는 단풍잎이 가득하고 길가에 돌 침상은 서늘한 맑은 기운으로 그의 지친 걸음을 쉬게 할 것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가을잎으로 저 벗의 옷에 가득 담기우고, 석상(石床)이 되어 그의 무릎을 앉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마음의 물살이 만드는 정감의 밀물과 썰물 속이어서, 박순이 보내는 이 한 편의 작별시 속에는 벗을 보내는 서운함의 밀물과 그를 기리는 그리움의 썰물이 벗이 훼집고 갈 눈 맑은 고요한 가을 산길 속에서 한없이 물결치는 듯 합니다. 그대여, 그래서 저도 그 정감의 물결에 젖어서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며, 아쉬움의 말을 그 물결 속에 살포시 놓아 보고 싶어집니다. 저 가을잎이 내 마음의 옷 속에도 소복이 흩어지도록…! |
'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의 그늘에 서서/그림움들을 데리고 (0) | 2005.12.01 |
---|---|
한시의 그늘에 서서/벗과 함게 떠나는 봄 (0) | 2005.12.01 |
한시의 그늘에 서서/삶을 적시는 빗소리 (0) | 2005.12.01 |
한시의 그늘에 서서/마음을 실은 지게 (0) | 2005.12.01 |
한시의 그늘에 서서/눈물의 강물 (0) | 200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