徇義輕生已足驚 의를 좇아 삶 가볍게 여김도 이미 놀라운데, 天花白乳更多情 하늘꽃과 흰 젖이 나타났으니 더욱 다정해라. 俄然一劍身亡後 으윽고 한칼에 몸은 비록 사라졌지만, 院院鐘聲動帝京 절과 절의 종소리가 서울을 울리우네. -일연(一然), < 滅身 염촉의 순교> (음: 순의경생이족경 천화백유갱다정 아연일검신망후 원원종성동제경) 이 시는 {삼국유사} [흥법] 편에 실려 있는 이차돈에 대한 찬시(讚詩)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역사적인 사실이나 설화에 대해 각 편마다 스스로의 찬시를 더해서, 저자의 정회와 글맛을 돋우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매력에 빠져서 찬찬히 읽어보면, 감성적인 삼국유사의 문장 속엔 여인의 옷자락처럼 유유하고 섬세한 맛이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끝마다에 붙어있는 찬시 또한 이야기와 시가 연결되는 운치가 있어서 그 내용들과 함께 읽는 맛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삼고자 하였으나 재래의 조신(朝臣)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는 스스로 순교(殉敎)를 자청하고 나서 '자기가 죽은 뒤 하늘이 상서(祥瑞)를 드리워 뭇 사람들에게 볼일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그의 잘린 목에선 흰 피가 한 길이나 솟아올랐고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꽃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감천(甘泉)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져서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고 합니다. 이에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정 한 편의 설화 같은 역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실일지는 모르겠으나, 불교의 공인이 결코 쉽게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저 아득한 세월 건너의, 알 수 없는 그 '사실과 진실' 사이에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이차돈의 죽음이 있고, 그 죽음이 부른 하늘꽃과 흰 젖의 이적이 있고, 세상의 큰 변화가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 신이한 이야기 그러나 역사의 한 속살을 함께 하고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이미지가 다시 짧은 시행 속에 담겨서 또렷한 종소리로 울려옵니다. 그대여 역사와 삶의 숫한 이야기들도 시로 들어와 앉을 땐, 좀 더 간결한고 정갈한 이미지의 옷을 입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에 귀 기우릴 마음이 있을 땐, 그 시의 이미지란 마음의 집에 감성의 종소리가 되어 삶의 그늘에 따뜻한 소리를 드리울 것입니다. 마치 시의 종소리와 종소리가 하늘꽃과 흰 젖 이야기를 싣고서 온 서울을 가만히 울리우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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