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

쌀이 있다면.

방울꽃 2008. 9. 10. 10:58

쌀이 있다면 팥을 한 줌 얻어서 떡을 해 먹겠는데 시루가 없구나.

 

가난한 이가 명절을 앞두고 한 넋두리이다.

 

新羅慈悲王時 有百結先生者 居狼山下 家貧衣百結 故人號謂東里百結先生 常以琴自隨 凡喜怒哀樂 有怫于心者 必於琴宣之 歲暮 隣里舂粟 爲迎歲之資 其妻無粟家舂 聞之竊歎 先生曰 死生有命 富貴在天 來不可拒 往不可追 庸何傷乎 乃鼓琴作杵聲 以慰之 世傳碓樂 是也 [삼국사기]

신라 자비왕때 백결선생은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는 낭산 밑에 살았는데 아주 가난하여서 옷을 백 군데나 기워 마치 메추라기를 달아맨 것 같은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동리 사람들이 백결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는 일찍이 영계기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기쁘고, 성나고, 슬프고, 즐거운 일과 불평스러운 일을 모두 거문고로써 풀었다.
한해가 저물어갈 무렵 이웃에서 곡식을 찧으면 그의 아내가 방아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남들은 모두 찧을 곡식이 있는데 우리만 곡식이 없으니 무엇으로 설을 쇠리오까?’ 하였다.
백결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기를 ‘무릇 죽고 사는 것에는 운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어 그것이 와도 막을 수 없고 그것이 가도 좇을 수 없는 법이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마음 아파하는가?  내가 그대를 위하여 방아소리를 내어 위로하겠소! 라고 곧 거문고를 타서 방아소리를 내었다. 세상에 이것이 전하는데 대악이라고 부른다.

 

객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한 여고생이 추석을 맞이했다. 같이 자취하는 친구들 쌀 떨어진 자취방에 혼자 두고 모두 집에 내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 식량 조달이 되니 말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있자니 어찌 보낼까?

그 좋아하던 라면을 며칠 먹다보니 국수 맛 같기도 하고,
우동 맛 같기도 하고 맛을 제대로 모르겠다.
수다 떨 친구들도 없으니 혼자 속으로 중얼 거린다.
맛으로 먹느냐
배고프니 먹지
라면으로 끼니를 잊고 있으려니
고향집의 부모님과 많은 형제들이 모여서 오손 도손 보낼 생각만 떠오르는 것이
처량 맞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억척같이 오빠 따라가는 건데 시간을 내가 어겼으니 할 말도 없고,

 

라디오에서는 입담 좋은 진행자, 리포터들이
양재동 톨게이트에 몇 만대의 차가 지났고,
부산 행렬은 거북이 걸음이고,
호남선행은 옴짝 달 싹을 안 하고,
강남터미널로 날 데려다 놓았다가
서울역에 데려다 놓았다가
집 근처 터미널에 내려놓았다가
각 지방 방송국들을 불러내 강원도에서는 감자떡이 최고이고,
경기도에는 밤 크기만 한 송편에 무얼 넣어야 맛있고,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까지 어쩌고저쩌고 나를 여기 저기 끌고 다닌다.
동네 집안 구석구석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 냄새까지 작은 자취방으로 풍겨지니
그야말로 환장하겠다.

 

지금이라도 완행 기차에 매달려서라도 갈까?
서랍에는 며칠 분 라면 값 밖에
차비도 없고
쌀이 라도 있다면

 

불어터진 라면 모습으로 작디작은 자취방에서 추석을 맞아 일찍이 일어나 있는데
짠물동네 토박이 같이 새침 떼기인 친구가 새침한 목소리로 날 부르면서 들어온다.
추석 차례를 마치자마자 엄마 옆에 붙어 있다가 음식을 챙겨 온 모양이다.
무척이나 고마운데도 그 새침 떼기의 모습과 말씨는 하나도 달라 보이지 않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내내 종알거리더니
난치병을 앓고 있는 친구 병문안 가자고 한다.
빈둥거리기에 질려가는 판인데 구세주 만났다.
한껏 멋 부린다고 갈래머리 예쁘게 따 늘어뜨리고  병원에 갔더니
선생님이랑 몇 명의 친구들이 와 있었다.
큰 병원 모습에 두려움으로 눌러있는데
병실에 들어서자 병원 크기보다 더한 두려움을 받는다.
파리한 모습, 파란 입술로 힘없이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고향집이 아닌 타향에서 처음 맞아보는 명절을 친구 덕분에 홀로 보내지 않고
그렇게 맞이하고 집에 돌아왔다.
친구가 있어 내가 쓸쓸하지 않게 명절을 보냈듯이
병실의 친구는 우리들의 방문이 있어 더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자취방으로 기어들어오니 책상에는 몇 마디 쪽지와 함께 음식이 놓여있다.
시골 갔다 온 다른 친구가 혼자 있을 나를 위해 왔다가 갔나보다.
집에 못 가 자취방에서 온 방을 휘저으면서 며칠을 보냈는데
주위 친구들이 마음을 써 주어 홀로 쓸쓸하지 않게 보냈던 기억이 있다.

 

나이 들어 명절 다가오니 신경 쓸 일.
골치 아픈 것들이 짐이 되어 다가온다.
그런데 오늘은 아련한 추억이 있어 날 여유롭게 한다.
내 주위에 홀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음식 한 접시를 전해 줄 수 있다면,
내 작은 마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이 맞는 명절이 그다지 쓸쓸한 연가는 되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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