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화사하다. 아랫녘에는 산수유, 매화꽃 축제가 끝났겠구나. 하얀 꽃들이 빼 꼼이 눈을 틔운다. 지난 비에 싹들이 올라온다. 몽골몽골 올라온다. 산책 갔다 오면서 봄빛을 만끽하고 왔다. 길가에 피어있는 제비꽃과 민들레꽃을 화분에 옮겨 공부방 창가에 놓았다. 오늘은 진달래꽃 가지와 오리나무 가지도 꺾어왔고, 지난번에는 버들강아지 가지도 꺾어왔었다. 자연을 아끼자고 난리판을 치는데 누구한테든 혼을 나야겠지만, 각오하고 이실 직고 합니다. 부디 혼내더라도 살짝꿍 꼬집어 주십사 부탁까지 올리면서,
지난주는 버들강아지 가지를 칠판에 테이프로 붙여놓고 이름을 적어 놓았더니 보고 만져보고 즐거워한다. 이름이 뭘까? 강아지라고 부르는 아이, 강아지털이라고 하는 아이, 강아지풀이라고 하는 아이 아무래도 모양이 강아지꼬리와 닮아서 일까? 신기해서 만져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너무 부들부들해서 느낌이 좋아요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자그마한 뚝배기 모양의 화분에 심어 놓은 식물에 대해 물어 본다. 얘들아! 이게 무슨 꽃이니? 어! 이거 무궁화요, 나팔꽃, 해당화……. 우리나라 들꽃 중에 흔하디흔한 야생화다. 제비가 올 때쯤 피는 꽃, 모양이 물 찬 제비처럼 예뻐서 그렇게 붙여졌다는데. 오랑캐꽃이라고도 하고 씨름꽃, 장수꽃, 병아리꽃, 앉은뱅이꽃, 가락지꽃 등등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고, 요즘은 변종이 많아졌다. 그래도 보랏빛으로 고개숙인 어렸을 적 논둑, 밭둑, 길가 가리지 않고 피었던 자그마한 꽃이 제일 예쁘다. 1학년은 아직 어리니 모를거야. 2학년도 그렇지? 3학년은 알만한데, 4학년, 5학년, 6학년 망설임 없이 제비꽃이네요. 하고 말하는 아이가 한 명…….어떻게 이 꽃 이름을 아니? 어렸을 때 길가다가 엄마가 말해주어서 알아요. 아 이렇구나. 너무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말문이 막힌다. 중학생 정도면 이것도 모르겠어요. 할 줄 알았다. 무궁화, 나팔꽃, 국화, 해당화, 붓꽃, 코스모스…….여전하다. 알고 있는 아이가 없다. 중학생인데도 시에도 가요에도 등장하는 진달래를 모른다. 아이들은 등·하교 때면 무엇을 보고, 듣고 다닐까? 대도시도 아니고 읍지역인데 길가에 피어있는 꽃인데 비록 아스팔트 틈을 비집고 올라와 언제 싹이 텄는지 모르게 꽃을 피우고 있는데 아이들은 모르고 지나치구나. 어쩌면 오고가면서 그걸 볼 시간이 없을 거야, 부모들이 아이들이 볼 기회를 안주는 듯하다. 10여분 거리만 되어도 태워다 준다. 아이들이 조금만 힘이 들면 그걸 못 본다. 어리다고 힘이 들게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럼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들은 그냥 시험보기 위해서 그 때 그 때 이름만 외우고 지나는 것이구나. 얼마전 2학년 교과서에 나왔었는데, 내가 지도했던 아이들도 모르고 있다. 그림으로만 보았고 내용만 문제풀기 위해서 읽고 지났던 것이다. 아이들 기억 속에 풀도 없고, 꽃도 없고, 들풀이름도, 꽃 이름도 없고, 어떻게 피고 지는지도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기만 할까?
우리는 들풀, 들꽃, 나무들을 보고 그것들을 노래로 흥얼거리면서 학교에 갔었고, 그 속에서 너무 놀다가 혼났고, 눈물 질금거리며 잠자리에 들어도 서럽지 않았는데 그래서 험하고 험한 세상살이, 끔찍하고도 무서운 세상살이에 부딪쳐도 그 때의 정서들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아기자기한 추억들을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가는데 푸석 푸석한 날이면 피식거리며 웃을 수 있는데, 할 말 없이 맹숭거릴 시간에 이야깃거리 있어서 도란도란 담소할 수 있는데…….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을까?
주말이면 곱게 차려입고 공주가 되고 왕자가 되어서 귀하고 귀한 모습으로 외출을 한다. 나서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올까? 박물관에도 가고, 체험 장에도 가고, 무슨 영화도 보고, 어디 어디 여행도 하고, 그런데 가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아 잠자리에 들어도 설레고, 가슴에 꽉 차 뒤척이게 할 그 무엇이 있을까? 길가에 핀 꽃을 쪼그리고 앉아서 요리보고 조리보고 볼 시간들이 없을까. 엄마 불러서 무슨 꽃이 예요?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어요? 이런 노래 불러 봐요? 그런 시간들이 없을까? 아이들이 많이많이 한가했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느리게 걷게 했으면 좋겠다. 앞질러 가는 아이를 불러서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제비꽃으로 반지도 만들어보고, 토끼풀로 시계도 만들어보고, 그 꽃이 얼마나 향이 좋은지 한 번쯤은 들판에 아이가 풀과 꽃과 나무와 하늘과 어울리는 그림이 되게 하였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어려운 이름의 꽃보다 주위에 올망졸망하게 생긴 우리 풀과 꽃에 시간을 내어 놓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