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

한시의 그늘에 서서/시흥의 그늘에 취해 누워

방울꽃 2005. 12. 6. 12:15
醉臥古松下 오랜 소나무 아래 취해 누워
仰看天上雲 하늘 위 구름을 올려다보네.
山風松子落 산바람에 솔방울은 떨어지느니
一一秋聲聞 하나하나 가을 소리 속삭임에야.
-신광수, <孫庄歸路醉吟 손씨 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취해 읊다>

(음: 취와고송하앙간천상운산풍송자락일일추성문)


그대여 이 시를 읽으시면, 솔 그림자 번지는 산바람의 눈빛과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시는지요. 한시의 숲 속에는 숨겨진 옛 시간을 있어서, 글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그 시간을 거닐어 보면, 옛 사람들의 삶을 향기를 향해 열려있는 마음의 능선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 마음에 능선에서 우리 마음을 잠시 내려보는 것은 시의 마음을 따라, 또 다른 삶의 그늘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보는 일일 것입니다.

언뜻 지나가는 시간의 그늘 그 그늘을 곱게 글자 속에 담아둔 영혼의 언덕! 그 언덕엔 돌아가는 길에 취해 누운 소나무 아래 어떤 객이 있고, 그 객의 흐뭇한 눈가에 비친 가을 하늘가 맑은 흰 구름이 있고, 그 눈빛을 다시 아래로 내리는 산바람이 떨구는 솔방울이 있습니다. 산바람에 떨어지는 솔방울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결로 듣는 소리일 것입니다. 솔방울은 홀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둘, 셋… 더불어 계속해서 지는 까닭에 청량한 공기를 끌어당기는 산바람 따라, 정갈하고 나지막한 가을의 마음에 그 소리 방울은 때굴때굴…, 땍때굴 바람의 물결처럼 떨어지고 또 굴러갑니다.

그 허물없는 가을 흙을 따라 그의 마음속으로도 굴러갔을 가을의 동그란 소리. 그 한적하고 똘망똘망한 소리가 여전히 살아서, 저 짧은 시구 안에 그대로 다 담겨있는 듯 하니, 글자들도 가을 하늘 바라보며 소나무 아래서 듣는 그 소리가 무척이나 좋았던가 봅니다. 시인은 흥건히 술에 취해서 소나무 아래 흐는히 누웠지만, 그의 가을 흥은 너무나 또렷이 깨어있기만 합니다.

그대여 솔 그늘 드리운 시의 능선에 누어 가을 하늘가 흰 구름 바라보며 산바람이 떨구어 주는 솔방울 소리에 영혼의 귀를 적시는 기분이 어떠하신지요. 시인은 솔 그늘 아래 취흥(醉興)에 누웠지만, 우리는 흥건히 언어의 그늘 아래서 시흥(詩興)에 취해 누워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