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몸의 문을 잠그고/박해석

방울꽃 2010. 9. 19. 20:52

불량 전기처럼 나를 방류시킨 내가 있다.

어떤 것은 벌써 나를 탕진해버렸다.

내가 아무것도 없다 나 아닌 내가 너무 많다.

 

오늘은 몸의 문을 잠그고

친히 국문을 해보아야겠다.

굵은 밧줄로다 칭칭 온몸 묶고

능지처참할 육신에 육실헐 마음까지 무릎 꿇려놓고

벌겋게 달아오르는 숯불 화로 켜놓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지지고 볶고 나 아닌 내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나를 빠져나가버린 대신 뻔뻔하게 앉아 있는 나를

사지육단을 불태워야겠다.

 

변명하는 입의 꼬리지느러미들

발버둥치는 항문까지 내남없이

문 걸어잠그고

추스릴 뼛조각 하나도 남김없이

불인두에 살타는 냄새 진동하도록

 

볼래, 안 불래?

몸의 문 꼭꼭 잠그고 나를 조져야겠다

 

누전된 삶에 새 휴즈 하나 갈아 끼우려고!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박해석  (0) 2010.09.19
우화의 꿈/오탁번  (0) 2010.08.17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 도종환  (0) 2010.05.15
나의 해에게 (딸에게 받은 글)  (0) 2009.06.06
아침 햇살 / 양현근  (0) 2009.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