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春去花猶在 봄이 가도 꽃은 아직 남아 있고
天晴谷自陰 하늘은 개었어도 골짜기는 절로 어둡네.
杜鵑啼白晝 두견이 대낮에도 울거니
始覺卜居深 비로소 알겠네, 내 사는 곳 깊은 곳임을.
-이인로(李仁老), <山居 산 속에서 사노니>
봄은 가도 꽃은 아직 남았으니, 깊은 골임을 알겠고 하늘은 정녕 활짝 개었건만 우거진 숲 때문인지 골짜기는 절로 어둡습니다. 그 고요함 속으로 대낮에 두견이가 울어서 커다란 소리가 온 숲과 흙 사이를 울리며 갑니다. 모든 것이 비정상적입니다. 봄은 갔으니 꽃은 떨어져야 옳고, 하늘은 개었으니 골짜기도 화창하게 밝아야 할 것이고, 두견이는 밤에 울어야 제 소임일 텐데 밤인 줄 알고 웁니다. 모두들 반대로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내 사는 곳이 그렇게 반대로만 돌아가는 곳임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 사는 곳이 깊은 곳이구나!' 자기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자각' 그것이 시 속에 흐르고 있는 울림의 전부입니다. 그 삶의 터전이란 단지 장소적 의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그 방식 속에 부여되어 있는 마음의 빛깔들을 함께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빛깔은 시인의 입을 통해서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의 빛깔을 조금씩 비쳐줄 수 있는 삶의 공간만이 드러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간에 묻어있는 삶의 질감들과 깊이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란 이렇게 돌려 말하는 곡선 속 감춤의 언어고 침묵 속에 말하는 '고요 속 움직임[靜中動]'의 언어입니다. 이인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대신 말하기'를 가지고서 '깊은 산골에서 사는 삶의 정취'를 말하기 위해, 봄에도 지지 않는 꽃과 갠 날에도 어두운 골짜기의 그늘과 낮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빌려 왔습니다.
1구에서는 시간적 배경을 2구에서 공간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3구에서는 공간과 시간 이 둘 사이를 꿰고 가는 두견의 소리를 놓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눈'은 끝구 '始覺[비로소 자각]'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비로소 알게 되었기에 그 골짜기의 깊은 그늘은 폐부 속으로 더 깊게 스미고, 두견새 소리는 더 크게 영혼의 숲을 흔들 것입니다. 늘 느끼는 것은 새롭지 않습니다. 새로움이란 새롭게 느끼는 것만 새롭습니다. 그 새로운 자작과 느낌들 속에 시의 눈은 밝게 떠지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 작은 한편의 시가 지닌 깊음의 심상과 호젓함의 울림이 작지 않은 까닭은 새삼스런 그 자각의 깊이 때문은 아닐런지요. 그 자각의 폭을 경물(景物)들로 대신 말할 줄 아는 절제된 언어의 간결한 눈빛 때문은 아닐런지요!
春去花猶在 봄이 가도 꽃은 아직 남아 있고
天晴谷自陰 하늘은 개었어도 골짜기는 절로 어둡네.
杜鵑啼白晝 두견이 대낮에도 울거니
始覺卜居深 비로소 알겠네, 내 사는 곳 깊은 곳임을.
-이인로(李仁老), <山居 산 속에서 사노니>
봄은 가도 꽃은 아직 남았으니, 깊은 골임을 알겠고 하늘은 정녕 활짝 개었건만 우거진 숲 때문인지 골짜기는 절로 어둡습니다. 그 고요함 속으로 대낮에 두견이가 울어서 커다란 소리가 온 숲과 흙 사이를 울리며 갑니다. 모든 것이 비정상적입니다. 봄은 갔으니 꽃은 떨어져야 옳고, 하늘은 개었으니 골짜기도 화창하게 밝아야 할 것이고, 두견이는 밤에 울어야 제 소임일 텐데 밤인 줄 알고 웁니다. 모두들 반대로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내 사는 곳이 그렇게 반대로만 돌아가는 곳임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 사는 곳이 깊은 곳이구나!' 자기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자각' 그것이 시 속에 흐르고 있는 울림의 전부입니다. 그 삶의 터전이란 단지 장소적 의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그 방식 속에 부여되어 있는 마음의 빛깔들을 함께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빛깔은 시인의 입을 통해서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의 빛깔을 조금씩 비쳐줄 수 있는 삶의 공간만이 드러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간에 묻어있는 삶의 질감들과 깊이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란 이렇게 돌려 말하는 곡선 속 감춤의 언어고 침묵 속에 말하는 '고요 속 움직임[靜中動]'의 언어입니다. 이인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대신 말하기'를 가지고서 '깊은 산골에서 사는 삶의 정취'를 말하기 위해, 봄에도 지지 않는 꽃과 갠 날에도 어두운 골짜기의 그늘과 낮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빌려 왔습니다.
1구에서는 시간적 배경을 2구에서 공간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3구에서는 공간과 시간 이 둘 사이를 꿰고 가는 두견의 소리를 놓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눈'은 끝구 '始覺[비로소 자각]'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비로소 알게 되었기에 그 골짜기의 깊은 그늘은 폐부 속으로 더 깊게 스미고, 두견새 소리는 더 크게 영혼의 숲을 흔들 것입니다. 늘 느끼는 것은 새롭지 않습니다. 새로움이란 새롭게 느끼는 것만 새롭습니다. 그 새로운 자작과 느낌들 속에 시의 눈은 밝게 떠지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 작은 한편의 시가 지닌 깊음의 심상과 호젓함의 울림이 작지 않은 까닭은 새삼스런 그 자각의 깊이 때문은 아닐런지요. 그 자각의 폭을 경물(景物)들로 대신 말할 줄 아는 절제된 언어의 간결한 눈빛 때문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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