俗客夢已斷 속객의 꿈은 이미 끊어졌는데, 子規啼尙咽 소쩍새는 아직도 목이 매이네. 世無公冶長 세상에 공야장 없으니 誰知心所結 누가 마음 맺은 것을 알아주리요. -김부식(金富軾), <大興寺聞子規> 어느 속객이 무슨 일인지 깊은 산골 속 밤의 산사에 앉았습니다. 꿈도 끊어지고, 밤을 가르고 날아가는 소쩍새의 서글픈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소리에 아득한 슬픈 날개를 달았는지 목 매임을 타고 이내 꿈속까지 살풋이 들려와 잠을 깨워놓았습니다. 저 새는 가슴에 무슨 맺힌 것이 있어 저리 울까요. 옛적에 새의 말[鳥語]을 잘 알아들었다는 공야장이란 이가 있었다면, 그의 맺힌 마음을 알아주었을 듯 한데, 산사에 잠시 묵은 속객인 나야 그의 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내 마음이 저 소쩍새 소리에 이끌리는 것일까요. 흔히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부어넣는 것을 이정(移情)이라고 하느니, 여기 '목이 맨 슬픈 소쩍새'는 어쩌면 내 마음이 옮겨간 마음속 새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情)을 옮기는 글자들을 따라, 시름 맺은 '소쩍새 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부어넣어서 가슴속 맺힌 심사를 밤의 정적 속 그 기다란 어둠의 눈썹 위로 얹어 놓습니다. 그래서 구슬픈 소쩍새 소리는 혼곤한 꿈을 안쪽을 적시고, 눈 먼 밤의 정적 밖깥으로 슬픔을 이끌고 아득히 날아갑니다. 소리란, 정적이 깊을수록 더 크게 들리고, 소리가 크게 들릴수록 정적의 수심은 더 깊어집니다. 그러나 잠 못 드는 깊은 밤, 서늘히 영혼의 숲을 흔드는 이 소리를 알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한유가 "봄은 새로써 울고, 여름은 우레로써 울고, 가을은 벌레로써 울고, 겨울은 바람으로써 운다(以鳥鳴春 以雷鳴夏 以 鳴秋 以風鳴冬)."라고 했듯. 소쩍새는 소리로 울고, 촛불은 눈물로 울고, 구름은 비로 울고, 물결은 파도로 울고, 시인은 글자를 빌려서 웁니다. '아는 이 없는 마음'을 목이 매이도록 울고 싶은 데 자신은 아니 울고, 소쩍새 소리에 마음만 살짝 담아서, 온 밤을 대신 웁니다. 소쩍새와 나 사이 서로의 마음을 마주보던 어느 잠 못 드는 소리의 밤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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