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

한시의 그늘에 서서/새벽 비에 담긴 마음

방울꽃 2005. 12. 1. 12:12
小雨絲絲濕一庭 작은 비가 실실이 온 뜰을 적시는데
寒鷄獨傍短墻鳴 추운 닭은 홀로 짧은 담장 가에서 우네.
幽人睡起身無事 묻혀 사는 이, 잠에서 깨어 아무 일 없느니
徒倚南窓望翠屛 다만 남창에 기대어 푸른 병풍을 바라보고야.
-강백년(姜栢年) <曉吟 새벽에 읊다>


한 편의 시에는 한 줌의 글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줌의 글자들은 오래된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억 속에서, 글자라는 의미의 집은 작으면서도 무한하고 오래되었으면서도 늘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그 글자들엔 시인의 감정이 끊임없이 새롭게 부어지고 또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여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의 그릇에 담긴 정회가 우리 마음에 부어져서, 우리의 마음과 시인이 마음이 글자의 기억을 타고서 하나의 정감의 물을 이루는 것일 것입니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강백년! 이 시는 그의 맑은 성품처럼 담백하고 청량합니다. 뜰에 내리는 실같은 가는 비, 그 비는 그의 눈빛을 밟고 가만히 뜰을 지나 흰 새벽의 눈썹을 적시는 비입니다. 그 비 속에서 추운 닭은 작은 담장 곁에서 홀로 새벽의 귀를 깨웁니다. 묻혀 사는 이이기에 몸은 한가로이 잡다한 일일랑 없습니다. 그냥 고요히 멈춘 듯 남창에 기대어 푸른 산으로 빚은 자연의 병풍을 바라봅니다. 속살거리는 비의 화음과 산의 침묵 속에서 시인은 어떤 마음을 그 사이에 살포시 놓았을까요.

보드랍게 뜰을 적시는 새벽 비의 여운 속에서, 푸르게 태어나 푸른 목숨으로 살아가는 비의 산을 바라보는 작은 운치 속에는 청빈(淸貧)의 그늘이 살짝 드리워져 있는 듯 합니다. 세상은 하나이지만 사람이 저마다 마음에 담고 있는 세상은 수없이 다르듯, 하나의 풍경도 그 풍경을 담아내는 그 마음의 그릇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담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풍경이 시의 그릇에 담길 때는 언제나, 시인의 마음의 물결에 깊이 젖은 담음에야 담기는 것이어서, 글자들의 눈빛엔 늘, 말하지 않는 '어떠한' 정조가 스미는 듯 합니다.

보슬비로 눈 가린 새벽처럼, 이 시에 담긴 소리들과 정경들은 고즈넉하고 깊은 느낌이 있습니다. 깊이 볼 수 있고, 깊이 들을 수 있는 것은 마음의 고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며, 또 그 고요함이란 마음의 청빈함이 빚는 소리일 것입니다. 명상의 호흡이 그러하듯, 시란 삶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고 고요히 바라보는 것이며, 또 그것을 통해 생의 속살을 보다 깊게 바라보는 것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시인이 본 것은 뜰의 가는 비와 푸른 산 병풍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시간의 눈빛과 삶의 찬찬한 의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시에 담긴 한 줌의 글자 속에는 너무나 편안하고 담백한 '맑은 마음의 여백'이 보슬비처럼 서려있는 까닭이 아닐런지요. 그리하여…, 그대여 그의 마음이 부어져 있는 저 새벽 비와 산 병풍 속에 우리의 귀와 눈을 감추어 두고서 삶을 보다 천천히 바라보는 것을 어떨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