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교실(최원현 강의)

제12강]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 쓰는 것이 왜 어려운가 ①

방울꽃 2006. 8. 23. 22:23
제12강]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 쓰는 것이 왜 어려운가 ①


7. 쓰는 것이 왜 어려운가 ①


수필 쓰기의 벽


1
지금까지 수필이 무엇인가, 또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직접 여러분이 <나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수필을 써보기도 했고, 또 제일 좋아하는 수필을 읽고 그 감상을 적어보기도 했으며, 예문으로 든 6편의 수필을 나름대로 평가도 해 보았습니다.
뿐아니라 제 졸저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의 내용을 중심으로 '나는 어떻게 수필을 쓰는가' 하는 체험적 글쓰기의 수필론을 통해 독자와 작가의 생각이 얼마큼이나 일치하는가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수필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이 <나>란 제목으로 쓴 두 가지 유형의 글쓰기를 통해 수필을 어떻게 쓰는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글 쓰기에 접근해 갈 것인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2
만일에 제가 안내했던 그 길대로 따라오지 않으신 분이 계시면 저를 따라오신 분보다는 훨씬 힘이 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몇 번 말씀 드렸듯이 수필 쓰기는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예를 하려는 사람이 처음부터 글씨부터 쓰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획 긋기 연습을 한 후에야 쉬운 글씨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처럼 수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3
혹 대수롭지 않게 여기셔서 그냥 지나치셨다면 다시 되돌아가 한 번 짚어 올라오도록 하십시오. 제가 여러분보다 뭘 더 아는 게 있겠습니까. 다만 20년을 수필만을 써왔다는 경험으로 여러분의 길 안내자가 되고자 한 뿐입니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해놓고 안내자 혼자만 가게 한다면 그같은 허망함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수없이 그 길을 와 본 것인데 또 다시 저만 가게 된다면 그건 여러분과 저 모두에게 큰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4
잔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사이버상의 강의가 갖는 단점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지금까지 여러분이 느끼신 것은 어떻습니까.
수필 쓰기가 쉬워 보입니까, 어려워 보입니까?
또 실제 써 보니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또한 어렵다면 무엇이 어렵습니까?
틀림없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수필 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시나 소설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어려울까요?
그 까닭을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성 수필가들의 고백도 한결같이 수필을 쓰면 쓸수록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걸 하나의 벽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산이라고 해도 좋고, 강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만
여하튼 수필 쓰기를 어렵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수필가요 평론가인 이유식 교수는 <수필의 벽과 그 극복의 길>에서 몇 개의 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창작 과정에서 만나는 수필의 벽에서
첫째 신변잡기로의 위험성,
둘째 소논문이나 논설문으로의 위험성,
셋째 참신한 주제 찾기의 어려움,
넷째 허구 도입의 망설임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유식 교수가 지적한 대로 우리가 수필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런 벽 때문일까요?

한 번 이유식의 <수필의 벽과 그 극복의 길> 중 '창작과정에서 만나는 수필의 벽'을 보면서 강의를 이어가겠습니다.

* 창작과정에서 만나는 수필의 벽

수필가들이 직접 수필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벽이라면
첫째가 신변잡기 식 경향으로 빠지기 쉬운 점과 소 논문이나 논설문 식으로 둔갑되기 쉬운 취약점이라 하겠다.
그 둘째의 벽은 참신한 주제를 찾는데 다른 어려움과 사실에만 충실하느냐 아니면 허구를 얼마쯤 도입해도
무방 하느냐에 따른 망설임일 것이다.

☞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수필은 신변에서 소재를 얻지만 신변잡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대부분의 수필을 써보려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글로 옮겨놓을 수 있는 이야기조차도 처음부터 수필답게 써보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한 줄도, 아니 시작도 제대로 못 해보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신변잡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아주 쌈박한 주제를 찾아내겠다는 욕심을 내다보니
가장 잘 알고 그래서 만만하게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들을 버려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필은 아주 특별한 소재, 아주 특별한 내용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노변한담' 같이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글이 좋은 수필이 될 수 있습니다.

1. 경수필의 경우 - 신변잡기로의 위험성

수필을 관례대로 경수필과 중수필로 크게 분류해 놓고 보면 경수필의 경우는 소재론적 입장에서는 자연히 신변수필이나 생활수필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히 신변수필을 쓰다보면 자칫 신변잡기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신변잡기란 문자 그대로 자기나 자기주변의 이야기를 단순히 늘어놓는 식이라 하겠는데 이런
수필은 의미성이 거의 없다.
신변수필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변잡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체험이 고도의 예술적 여과를 거쳐 질서화 내지 의미화 된다면 거기서 우리는 인생의 어떤 보편적 진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감동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경수필을 쓰는 경우라면 신변수필이 신변잡기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조심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신변수필 = 신변잡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오히려 좋은 글감, 좋은 글을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만의 체험인 소재에서 예술적 여과를 통해 철학적 또는 문학적 의미화를 가져오라는 것이지
그냥 신변사를 줄줄이 써놓기만 한다면 그건 문학이라 하기 어렵게 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수필 쓰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수필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하여
수필을 오해함으로써 갖게 되는 잘못된 접근 때문인 것입니다.
'신변수필'과 '신변잡기'를 혼동하게 됨에 따라 소재의 빈곤을 겪게 되고 그래서 수필 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2. 중수필의 경우 - 소 논문이나 논설문으로의 위험성

중수필을 쓰다보면 고도한 작법훈련이나 발상법이 없으면 무미건조한 소 논문 식이거나 논설문식으로 끝날 위험이 높다.
이런 함정을 극복하려면 첫째로 소재를 수필의 제재(題材)에 과부족이 없는 '단소경박'(短所輕薄) 형을 찾아내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어느 누가 '장대중후'(長大重厚) 형의 제재를 가지고 글을 쓴다면 십중팔구 소 논문 식이거나 논설문 식으로 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 만큼 중수필의 제재라면 가령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심리학. 생활과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철학. 윤리학 등의 인문과학과 나아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물에서 빠져 나온 사금(砂金)과 같은 제재가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제재에 대해서는 정면접근을 피하고 오히려 측면이나 후면접근을 하는 것이 수필적 접근이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낙수'(落穗)요 '여적'(餘滴)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런 형의 중수필에서 인생의 진실이나 어떤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적 수필다운 효과요, 그 멋과 맛이라 하겠다.
중수필이라고 해서 '장대중후'한 큰 창문 식 제재를 통해 인간사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단순경박'한 제재 즉 바늘구멍이나 열쇠구멍 또는 문구멍을 통해 인간사를 바라보는 것이
긴장과 짜릿함의 멋이 있다는 뜻이다.
또 이렇게 되어야 소 논문이나 논설문 식의 무미건조 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수필의 집은 대형 간판이 거창하게 붙은 '불고기 집'이나 '불 갈비 집'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있음직한 '꼬리 곰탕 집'이거나 '족발 집'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만약 여성의 남녀동등화 문제를 수필로 다룬다고 하자.
'장대중후'한 제재를 피한다면 가령 여성의상을 통해서도 그런 주제를 얼마든지 형상화 할 수 있다.
아니 진정 '바늘구멍' 식 관찰이라면 의상에 부착된 단추나 지퍼의 위치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아시다시피 여권신장이 안 됐던 지난 시절에는 블라우스나 바지 그리고 스커트나 원피스의 단추나 지퍼가 불편스럽게도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복고풍이 아닌 이상 남자복식과 마찬가지로 그 위치가 모두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 흔히들 중수필이라고 하면 논문식 글을 떠올리고, 또 무거운 주제이거나 양이 많아지면
중수필로 몰아버리는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거야말로 '수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여성의 남녀동등화' 같은 주제도 여성 의상의 단추나 지퍼의 위치만 다루어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무거운 주제가 주어지면 내용도 무거워야 하고, 가벼운 주제이면 내용도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하다보니 쉽고 편하게 풀어갈 방향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수필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엉킨 실 끝을 찾아내는 것처럼 접근해야 합니다.
첫 문장부터 독자가 보고 반할 정도로 써보겠다고 하거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의지가 앞서면 결국 시작은 했다 하더라도 몇 문장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