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교실(최원현 강의)

제13강] 쓰는 것이 왜 어려운가 ②

방울꽃 2006. 8. 23. 22:24
제13강] 쓰는 것이 왜 어려운가 ②


3. 참신한 주제 찾기의 어려움

소재에서 주제를 찾아내건, 주제를 정하고 그에 알맞는 소재를 찾건 수필창작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참신한 주제 찾기에 있다고 하겠다.
특히 경수필만 써 온 수필가라면 한두 권의 수필집을 내고 보면 소재나 주제의 고갈을 실감할
것이다.
비슷한 소재나 비슷한 주제에 스스로 싫증도 느낄 것이고, 때로는 참신한 주제가 없을까 많은
고심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발상법의 전환'이나 '착상법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점은 수필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로 한다.

☞ 남이 찾아내지 못할 기발한 생각이나 소재를 찾아내면 기막힌 수필이 나오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밀가루'라는 재료로 우리는 열 가지도 넘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본 것, 보이는 것 그대로만 보기 때문에 쓸거리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하늘은 파랗다, 바닷물도 파랗다, 산의 나무들도 파랗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만일 그림으로 그린다면 그들은 하늘도 빨갛게 그리고, 나무도 노랗게 그릴 것입니다.
그들이 보았던 하늘 중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저녁 노을진 하늘을 아이들은 그리는 것이고, 햇빛이 찬란하게 내리 쏟아지는 시간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무를 본 강렬한 기억이 서슴없이 나무를 노랗게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필 쓰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도 보이는 대로 한 가지만 생각하고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발상법의 전환', '착상법의 전환'도 바로 이러한 바꿔 생각하기의 발전인 것입니다.


4. 허구도입(虛構導入)의 망설임 문제

수필가라면 때로 허구의 도입이 허용되는지 안 되는지 꽤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필평론에 있어서도 이미 이런 점은 공개적으로 쟁점화 된 바 있다.
구성화 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사실 그대로여야 한다는 논리와 필요시엔 허구의 도입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 있다.
허구를 일체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자들의 논리는 수필이 '체험의 문학'이요, '사실의 문학'인만큼 어디까지나 체험이나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필을 소설과 대비해서 본다면 우선 그 논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이 '허구의 문학'이라고 해서 일체의 어떤 사실이나 체험이 들어가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100% 허구이어야 한다고만 주장하면 그것은 개념적 정의에만 지나치게 속박시키는 폭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필이 '사실의 문학'이라고 하여 허구가 조금이라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사실의 문학'이란 개념적 정의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경직된 논리라고 하겠다.
나는 무조건적인 허구의 도입은 인정하지 않지만 예술적 효과나 감동의 창출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부분적 허구는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가령 한 편의 수필에 있어서 뼈대가 되는 사건이나 사실 자체를 허구화시켜 사실인 양 내보여서는 안 되겠지만 지엽적이거나 구성적 동기부여라면 허용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수필가 이철호 씨가 '수필창작에 있어서의 구성과 그 전개'란 글에서 밝힌 바도 있는데 나도 상당부분 공감을 한 바 있다.
수필은 비록 '사실'에 충실한다 해도 100% 사실위주의 글이어야만 하는 일기문이나 르뽀르다쥬 그리고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만큼 '사실의 문학'이란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선의의 거짓말'이란 말이 있듯이 '선의의 허구'는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가는 사실의 충실한 기록자가 아니며, 단순한 작문가도 아니라 수필이라는 집을 창조적으로 지어내는 예술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수필이 자기의 체험적 이야기라 하여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니까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소설은 아예 '허구'라고 하여 출발을 하니가 그런 부담이 없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모두 '허구'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소설 또한 작가의 직.간접 체험을 바탕으로 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수필에서 너무 '허구'에 민감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수필은 자기의 이야기인데 자기의 이야기를 왜곡되게 쓰거나 또는 과장되게 쓴다면 결국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이며, 그것은 이미 수필로서의 품격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위 이유식 교수의 글에서

'수필가는 사실의 충실한 기록자가 아니며, 단순한 작문가도 아니라 수필이라는 집을 창조적으로 지어내는 예술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처럼 수필도 창작문학이란 점을 인정할 때 창조적으로 집을 짓는데 풀향기를 내고 싶으면 흙속에 풀을 넣을 수도 있고, 색감을 넣을 수도 있는데 그걸 '허구'를 삽입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수필 쓰기에 들어가면서 진실하게 솔직하게 수필을 쓴다는 점만 있지 않는다면
이 또한 크게 문제될 성질의 것이라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상에서 수필쓰기에 대하여 벽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엔 쉬워 보이다가도 막상 해 보려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처음엔 어려워 보이다가도 막상 해보면 할만한 것도 있습니다.
수필쓰기도 그렇습니다.
무엇이 어려운가,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첫 단추부터 끼워야 함에도 그 첫 단추를 무시하고 건너 뛰어서 두번째 내지 세번째 단추부터 끼우려 하니 잘 안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쉬운 것, 하찮은 것 같아 보이는 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우린 그걸 무시해 버리는 것이지요.

수필은 작은 것, 하찮아 보이는 것을 귀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어야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눈, 그런 마음, 그런 생각이 쑥쑥 자라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