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교실(최원현 강의)

제18강] 좋은 수필을 위하여 - 읽고 싶어지는 수필(정리1)

방울꽃 2007. 11. 24. 21:36
제18강] 좋은 수필을 위하여 - 읽고 싶어지는 수필 (정리1)


* 지금까지 수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휴 어렵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필을 쓰기 위해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수필 쓰기의 기초는 많은 훈련입니다.
강좌를 1차적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기초에 대한 얘기를 먼저 좀 하겠습니다.

1.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사람이 직접 체험으로 얼마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거의 대부분이 간접체험에서 얻는 것들이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독서일 것입니다.
많이 읽어야 몰랐던 새로운 사실(지식)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래야 생각이 생기고, 생각이 생겨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윤오영 선생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글이거든 몇 십번이고 읽으라'고 했습니다.
읽되 좋은 글을 골라 읽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마치 시험공부를 할 때 꼭 시험에 나올 문제만을 골라 공부하는 사람과 그냥 아무렇게나 공부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고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데 해 지겠습니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것은 글쓰기의 가장 기본인 것입니다.

2. 문장 쓰기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작가로써 기본적인 것, 맞춤법은 말할 것 없고, 문법, 써야 할 말, 쓰지 말아야 할 말, 품위를 높이는 말, 품위를 훼손하는 말, 천박하거나 퇴폐적인 말 등을 잘 가려 쓰는 훈련과 올바른 문장을 만드는 법을 철저히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긴 문장으로 숨이 가빠지게 하거나, 너무 짧아 리듬을 끊는 것도 문제입니다.
좋은 문장을 많이 읽고 외우되 그 문장을 통해서 나름의 새 문장을 만들어(창조) 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 글은 인품입니다. 겸손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수필은 곧 그 사람이라 했습니다.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 어떤 자세로 그 글을 썼는지 읽어보면 금방 알게 됩니다.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과할 것은 여과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글을 통해 품위를 잃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발로 뛰면서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그 자료를 통해 쓰고자 하는 내용을 추출해 냄으로써 좋은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글에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너무 화장을 한다던가, 지나치게 기교적인 글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보다는 잃게 합니다. 특히 수필은 지식을 전하는 글도 아니요, 독자를 설득시키는 글도 아닙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지나치게 드러내도 반감을 살 수 있고, 너무 설득력이 없으면 글이 힘을 잃게 됩니다.
수필을 가슴으로 읽는 글이라고 한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너무 자세히 설명하여 독자의 몫이 없어지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고, 또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거나 인신 공격성 비판을 하면 안 되며, 또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닌 것을 굉장한 사실처럼 과대하게 나열하거나 일기나 자서전처럼 자기의 얘기를 나열식 설명식으로 풀어놔도 글은 맛이 없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랑적인 글이 되면 그 글은 문학성도 품위도 잃게 됩니다.
어떤 글이든 독자를 감동 시키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읽어서 감동을 주는 글은 삶속에 기쁨을 주며, 마음과 정신을 함께 맑고 아름답게 해 줍니다.
삶속에서 향기가 나게 하는 글, 수필은 바로 그런 글, 그런 문학입니다.

그럼 이제 좋은 수필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품격이 있는 수필

글을 쓰는 작가라면 해박하고 광범한 지식, 심오한 사상, 예술적 감각, 작가로서의 눈, 예리한
직관력과 탁월한 관찰력, 풍부하고 뛰어난 상상력 등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요건들만 충족된다 해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필은 공감(共感)의 문학입니다. 허구가 아닌 실제 나의 체험, 곧 나의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필을 쓰는 것이니
첫째로 무엇보다 진솔함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고,
두 번째는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문장력이 받침 되어 주어야 합니다.
독자가 쉽게 수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글, 그리고 끝까지 읽어가며 작가의 체험이
자기의 체험인 것으로 공감하며, 읽고 난 후엔 작자가 의도한 감동이 길게 여운으로 남아 있는 글, 그런 수필이 좋은 수필이 아닐까싶습니다.

수필은 품격(品格)이 있는 글입니다.
품위 있는 글,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평범한 듯 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글이어야 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수필은 힘들게 써서 쉽게 읽혀져야 좋은 수필이라고 합니다.

윤모촌은 <수필문학의 이해>에서 '글을 쓰는 자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편의 수필을 활자화 시켜 독자 앞에 내놓기 전에 참으로 '문인'이란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나'인가 항상 우려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문인'의 칭호를 얻기 위해 관문을 향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문인 칭호는 관문을 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칭호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칭호가 아니라 실력이고, 인정을 받을 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세 여하에 따라 갈림길이 결정된다.
수필은 쓰기 쉬운 글이라는 인식에서, 아무나 써서 책으로 내기에 적당한 문필로 알기 쉬우나 쉽게 쓸 수 없는 글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서둘러 발표하려는 허욕에 부채질을 한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문장을 가장 가볍게 여기면서 찍어낸다.
이리하여 수필에 시비가 따르고 격하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수필은 자율 타율의 비평이 높게 요구되는 글이다.
관문을 통과해 놓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는 한, 수필을 쓰는 길은 더 멀어진다.
활자로 되어 나온 작품을 놓고 개작(改作)을 할 만큼의 채찍이 필요한 글이 수필이다.'

곧 좋은 수필이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되 작가적 사명감과 많은 문장 수련을 통한 기본을 갖추고 또 계속적인 보완 개작을 통해 독자가 아주 편하고 쉽게 그러면서 감동을 받게 쓴 글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속에서 작가의 인품이 드러나고, 품향이 풍겨나게 된다.

좋은 수필이란 결국 자기의 진솔한 삶이 문학의 향기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2. 생각 비우기

수필에선 생각은 많이 하고 쓰기는 쉽게 쓰라고 했는데 많은 생각을 한 중에서 글로 씌어지는 것은 꼭 남겨야 할 것만 남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힘들게 얻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한 마을에 농부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똑같이 농사를 짓는데 한 농부는 많은 소득을 낼 욕심으로 벼를 아주 빽빽하게 심었고,
다른 농부는 듬성듬성 벼를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듬성듬성 심은 논의 벼는 씩씩하게 새끼를 쳐가며 큰 포기를 이루어 잘도 자라는데
빽빽하게 심은 논의 벼는 이상하게도 자꾸 죽어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벼를 너무 촘촘히 심었기 때문에 벼 포기가 커지면서 벼와 벼가 서로 닿아 썩어버리는 이른바 문고병이란 병에 걸렸던 것이다.
결국 지나친 욕심이 일 년 농사를 망치게 한 것이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도 이런 불필요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거기에 꼭 필요한 것인지, 만일 그 문장을 빼 버려도 글이 된다면 그 문장은 사실 필요 없는 문장일 수 있습니다.
곧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생각의 양(量)이 아니라 깊이 있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잡다한 생각들이 정연하게 정리되고 꼭 필요한 것으로 농축되어야 정갈한 문장, 함축되고 정제된 문장을 얻게 된다.

생각을 비우는 작업이란 바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을 말한다.
의도적으로 멋진 글을 쓰고자 하면 오히려 저속한 글이 되기 쉽고,
자기의 기분에 따라 제 멋에 도취하는 글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3. 수필은 속을 비워내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곳에 간 적이 있다.
흙을 반죽하여 형태를 만드는데 속을 비우고 겉만으로 형태를 유지하는 작업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속이 차있어도 겉모양은 마찬가지겠지만 속이 비어있지 않으면 완성되어도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게 되어 그릇이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일도 '구성'이라는 모양 갖추기를 제대로 해낼 때 쓸모 있는 그릇처럼 읽는 이에게 무언가 담아줄 수 있다.
너무 친절하고 장황한 설명은 읽는 이의 생각 샘을 막아버리는 역할을 하여 작품의 맛과 멋을 맛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독자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 주어야 독자도 흥미롭게 읽어주는 글이 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함축된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생각 그릇에 여운으로, 공감으로, 즐거움으로 담길 수 있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좋은 수필은 작가의 품향이 진솔하게 배어나오는 글, 그러면서 읽는 이가 아주 쉽게 읽되 소박한 감동을 주는 것이 수필이다.

욕심을 내어 치장하지 않고, 꼭 말해야 할 것만 말하되 군더더기가 없이 담백한 맛만을 취하는 것으로 불필요한 생각들은 비우고, 작가로써 꼭 담고자 하는 것만 담는 것이다.
곧 그래야 필요한 것을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을 얻을 수 있고, 거기에 향기를 담거나, 맛을 담거나 할 수 있다.

수필 쓰기에서 꼭 버려야 할 것은 불필요하게 화장을 하거나 화려하게 옷을 입히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을 맑히고, 생각을 비워 담기만 하면 담길 수 있는 깨끗한 생각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어쩌면 수필 쓰기에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닌가 싶다.

수필은 자기를 그대로 독자에게 보인다는 것에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독자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강좌에서 강조했던 과정 하나하나를 착실히 거쳐 가며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코 글쓰기가 거저 될 수는 없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과 도전에서 얻어지는 값진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