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교실(최원현 강의)

제11강]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 6. 무엇을 써야 할까 (3)

방울꽃 2007. 11. 24. 21:44
제11강]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까?

7.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까?


프랑스의 철학자요 에세이스트인 알랭(Alain)은 "만약에 당신이 무엇이든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글로 써보라"고 했습니다. 쓰고 싶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글로 써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데에 대해선 두려움이 먼저 앞섭니다. 말로는 잘 하는데도 막상 글로 써보라면 잘 안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에 대해 수필가 정봉구는 그의 《새로운 에세이 작법》(1996.신아출판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수필작법의 요령을 노변담화의 자세로 비유합니다. 겨울 밤 화로가에 둘러 앉아서 아무 부담 없이 나누는 세상얘기, 그런 기분을 수필의 분위기로 지적합니다. 우리가 어려서 시골집 온돌방에 앉아서 화로에 손을 쬐며 할머니의 옛 얘기를 듣던 추억,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환상일까요. 그러나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난로가에 앉아서 돌림뱅이로 얘기를 하다가 그 차례가 당신께 돌아왔다면 당신은 무슨 얘기를 하시겠습니까. 날씨 얘기도 할 테고, 정치 얘기도 할 테고, 어쩌면 집안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걱정거리나 그 반대의 자랑거리 같은 떠들썩한 얘기도 나올 테지요.
우리가 어려서 화로가에 옹기종기 앉아서 턱을 치대고 듣던 할머니의 옛날 얘기에는 분명히 우리의 넋을 사로잡던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넋을 사로잡는 '무엇'입니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 내가 하려는 얘기에는 적으나마 하나의 정신이 깃들어야 할 것입니다."

둘러앉아 돌림뱅이로 하는 얘기를 듣다가 내 차례가 되면 아주 당황이 되지요. 그러나 막상 얘기를 시작하면 또 얘기가 얘기를 낳게 되고, 금방 분위기에도 적응이 되어 생각보다 잘 해 내기도 합니다.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글을 쓰고싶어 하는 만큼 두려움도 더 크게 느낍니다. 그런데 말을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글로 쓰라면 또 더 어려워집니다.
노변담화(爐邊談話)의 분위기는 수필 쓰기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옛이야기를 듣던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수필의 호흡을 갖추는 것입니다.
여기에 할머니의 얘기 속에 들어있던, 나를 사로잡던 그 무엇, 그 이야기의 핵심처럼 나의 이야기, 나의 글에서도 그 핵심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문학성이라 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곧 글쓰는 이의 정신인 것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모든 문학은 인간의 삶의 이야기요, 인간 삶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풍속이나 습관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두 인간 생활과 관련됨으로서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겪어온 삶의 경험과 그런 삶 속에서 시도한 생각과 판단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가 글로써 쓸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잘 써보려는 생각,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나서 흘러나오는 표현은 왠지 값없어 보여서 조금 멋진 말을 찾게 되고, 고상한 말을 생각케 됩니다.
그 결과는 바로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수필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천득의 <수필>이나, 이양하의 <나무> 같은 수필을 마치 수필의 모범이요 교본처럼 생각하고 그것에서 수필 쓰기의 비밀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한 작품이 수필의 모범이 될 수는 없습니다. 수필은 자기의 생각을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쓰는데 남의 틀에 집어넣어 그렇게 써보려 한다면 그 수필은 이미 자연스러움을 잃게 된 것이요, 진실하고 솔직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수필에서 그 맛을 잃게 될 수박에 없습니다.
따라서 수필은 너무 이론에 집착하다보면 좋은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수필에 형식이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집착의 한계를 초월하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화로가에서 듣는 할머니의 옛날 얘기나 돌림뱅이로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같으나 그 이야기가 넋을 빼앗을 만큼 집중시키고 재미를 주던 그 '무엇'을 글 속에 넣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예로 드는 두 편의 글은 제가 운영하는 사이트 <에세이코리아>에서 수필을 공부하던 이들에게 '나'란 주제로 글을 쓰게 한 것 중 두 편입니다.


[예문] 나를 말한다/고현숙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수필로 엮어 보라는 제의를 받고 한참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를 글로 표현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그려보라는 말인지. 글을 통해서 만나는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면 쓰기도 전에 긴장이 되어 가능하면 좋은 첫인상으로 상쾌한 인사를 하듯 그려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랴.
또한 그렇게 그려낸다 한들 내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현명한 독자들은 몇 초도 안 가 눈치채고 말 일이니 그저 솔직한 모습 그대로를 적어 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만 내 독자(?)들은 내가 그려 놓은 내 모습에 신뢰를 할 수 있고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 수 있으리라는 바램을 갖고.
지나온 시간들이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 여겨져 생략하고 현재의 나를 말해 보고자 한다.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고 지나온 시간들 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 현재의 모습을 보는 건 지난 시간을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나의 모습은 삼십대에 머물러 있는 한 남자의 아내이며 주부이자 직장인이며 작은 기획실을 운영하는 사무실의 대표이기도 하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에서만 살아왔지만 언젠가는 도시를 탈출(?)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도시생활 부적응자(?)이기도 하다. 도시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는 이상한 믿음 탓에 어쩌면 바보가 되어 가고 있을지도 모를.

언젠가 절친한 선배가 나를 지칭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극과 극을 오간다는.
그 말처럼 나를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했고, 지금까지도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말이 딱 맞다 싶을 만큼 표면적인 모습이나 내면의 모습이나 양극을 포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거래처 사람을 만나거나 중요한 약속을 몰아서 하는 월요일엔 정장차림을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엔 찢어진 청바지나 진바지에 셔츠 하나로 나고, 별 말이 없고 조용한 성품이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대중들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의 향을 좋아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겨하여 딱히 나갈 일이 없으면 일주일 내내 꼼짝 않고 집밖을 나서지 않는 수도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등산을 좋아하여 스트레스가 쌓인다 싶으면 빈집에 들어와 음악을 듣거나 아무런 말도 없이 산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물론 그 날 집으로 돌아올 테지만.
걷는 것을 즐겨하여 이른 새벽이나 초저녁 혼자서, 혹은 아이를 앞세우고 남편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차를 타고 다니기 보다 자전거를 타기 좋아하고 틀에 맞춰진 모습보다 자유로운 흐트러짐을 사랑한다. 지난 4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서 그저 생각이 풀려나는 대로 쓰거나 그때그때 감정의 흐름을 옮겨 놓거나 하여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이다.
혼자서의 글쓰기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허용이 될지 모르나 독자들에게 내 보이기 위한 글일 때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걸 안다. 그러니 고칠밖에.
감정에 충실함이 좋고 조금 빈 듯한 모자람이 좋다
여러 사람을 곁에 두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맺은 사람과는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마음을 주어 오래도록 곁에 머물게 하는 사람이 몇 있다. 유난스레 정을 표현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는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 좋다.
외형적인 조건에 구애됨 없이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고 그렇게 만나진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그래서 내겐 나이 많으신 어른도, 동네 꼬마들도, 사무실 앞 구두방 아저씨도, 아파트 우유배달 아주머니도, 같은 초등학교 출신의 머슴아들도, 한 달에 한번씩 들르는 '객석'레코드 가게 아저씨도 다 친구가 될 수 있다.
슈바이처를 존경하고 그의 나눔을 사랑한다. 내 것만을 챙기는 것보다 나눌 줄 아는 마음을 사랑하고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사랑한다.
무수한 사랑의 대상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나는 가식을 싫어한다. '척'하는 것을 싫어한다. 구속을 싫어하고 거짓을 싫어한다.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파헤쳐지는 자연을 아파한다. 나눌 수 있으면서 나누지 않음을 미워한다. 함께 살아가면서 함께이지 않음을 싫어한다. 입으로만 떠드는 사랑을 싫어한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나눔을 싫어한다.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지 못하다 말하지 못하는 용기 없음을 아파하고 바른 것을 바르다 말하지 못함을 슬퍼한다. 나태함을 싫어하고 핑계 댐을 싫어한다.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내가 좋아한다 해서, 사랑한다 해서 그러한 것들을 다 내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이라 해서 내 안에 그러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열하지 못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랑하고 싶은 것들도 있고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럽기만 한 싫은 부분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사랑하고 싶은 부분도 버리고 싶은 부분도 모두 나의 일부인 것을.

요즘처럼 가을 하늘이 깊고 구름이 깨끗한 날엔 머리 끈 하나로 질끈 묶고 맑은 얼굴로 길가에 퍼질러 앉아 하늘이나 바라보고 싶다.
요즘처럼 새벽하늘이 명징한 날엔 밤새 창을 열어두고 함께 날을 밝히고 싶다.



위의 예문 <나를 말한다/고현숙>에는 주제를 받고 고민하는 상황부터 전개가 됩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수필로 엮어 보라는 제의를 받고 한참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를 글로 표현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그려보라는 말인지. 글을 통해서 만나는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면 쓰기도 전에 긴장이 되어 가능하면 좋은 첫인상으로 상쾌한 인사를 하듯 그려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랴.
또한 그렇게 그려낸다 한들 내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현명한 독자들은 몇 초도 안 가 눈치채고 말 일이니 그저 솔직한 모습 그대로를 적어 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만 내 독자(?)들은 내가 그려 놓은 내 모습에 신뢰를 할 수 있고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 수 있으리라는 바램을 갖고.'

먼저 '나'를 표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나를 글로 표현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그려보라는 말인지.' 그 고민은 또 불안까지 불러옵니다. '가능하면 좋은 첫인상으로 상쾌한 인사를 하듯 그려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랴.
또한 그렇게 그려낸다 한들 내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현명한 독자들은 몇 초도 안 가 눈치채고 말 일이니'

글이란 누군가 읽게 될 것인데 일단 썼다고 해도 그 다음도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곧 솔직하게 그려내야 독자도 내 모습을 신뢰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자신에 대한 얘기를 독자 앞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필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특별한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이런 나만의 글쓰기 방식을 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표면적인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자신의 성격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들을 말함으로서
자기를 표현합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좀 떨어지는 감이 있으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어느 정도 멋(?)을 내 가면서까지 자신을 잘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예문] 나/장미

저녁 뉴스를 보면서 나는 달려간다.
시간이 없어 뉴스 보는 시간을 운동 시간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단지 가만히 앉아서 뉴스를 본다는 게 왠지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 한 30여 분을 이렇게 달리기를 하곤 한다. 그러고 나면 별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루 마무리를 제법 잘 한 듯한 느낌에 스스로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지금 달려가고 있는 이 곳은 어디쯤일까.
언젠가 와 본 듯도 하고 어쩌면 내 미래에 가 보게 될 듯도 한 많이 낯익은 장소. 나는 한 남자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다가 노래도 부르고 그와 식사를 하고... 아 나는 그와 결혼을 한다.
내 주변엔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세 동생들이 둘러 서 있으며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이 웃음 띤 얼굴로 내 결혼을 축하해 주고 있다.
내 사랑하는 사람 뒤쪽으로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의 형제들과 친구, 친지들이 역시 빙 둘러서서 그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있다. 내 둘째 손위 동서가 될 여자가 다가와 신랑보다 키가 더 커 보인다며 드레스에 맞춰 신은 굽 높은 신을 자기가 신고 있는 고무신과 바꿔 신자고 한다.
나는 기꺼이 그러마고 답하고 내가 신고 있던 굽 높은 신을 동서 될 여자가 신고 있던 고무신과 바꿔 신는다. 내 키가 작아졌다고 내 친구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지만 나는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나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좀 더 커 보일 수 있다면 내가 조금 작아 보인다고 대수겠는가.
혹 이야말로 참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라도 날 듯하다.

나는 계속 달려간다.
숲길을 지나고 신작로를 지나서 나는 워커힐 자락에 있는 서울 광장 초등 학교 입학식장으로 들어선다.
왼쪽 가슴에는 길게 접은 하얀 손수건이 머리 큰 옷핀으로 고정되어 매달려 있고 커다란 두 눈은 구령대 위에 서서 입학 식사를 하는 선생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이젠 학교에 다니게 됐다며 신나 하는 나를 엄마는 가끔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곳은 한강변 아마도 지금의 성수역 근처인 듯하다.
학교는 산길을 통해서 가야 하는데 그 산에는 간혹 나쁜 사람들이 나타나 어린아이들을 해친다는 말이 들린다. 내가 사는 동네는 아니었지만 얼마 전에는 내 또래의 아이가 유괴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 아이는 그 후로도 결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엄마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나를 학교에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곤 한다.
학교가 파하면 나는 점심도 안 먹고 숙제를 한다. 숙제 후에는 강가에 나가 모래로 두꺼비집을 짓고 놀거나 여린 분홍 메꽃을 따서 머리에 꽂고 논다. 마당 겸 텃밭에 조로록한 쇠비름을 뽑아 쇠비름뿌리를 훑으면서 금옥이랑 화자랑 둘러앉아 '신랑방에 불 켜라 각시방에 불 켜라' 노래를 부르면 쇠비름 뿌리가 정말 불처럼 붉은 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서울 자양 초등 학교로 전학을 하지만 아버지 일이 여의치 않아 전라도 무안으로
이사를 한다. 그 곳 아이들은 너무도 나를 힘들게 한다. 어른들 얘기로는 그것이 바로 텃세라고 한다.
내가 나중에 자라서 알게 된 일들 중에 가장 버려야 할 것이 바로 텃세라는 것을 나는 5학년을 다니던 그 1년 동안 시골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내가 만약 공부를 못한다면 저 친구들은 나를 친구 자리에 끼워주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공부만큼은 자신 있었다. 물론 고무줄놀이와 공치기, 줄넘기 등도 열심이어서 우리 반에서 가장 못하는 아이가 언제나 내 편이 되곤 하였다. 당시엔 대부분의 가정 생활이 그랬었지만 시골에내려와서도 우리는 넉넉지 못했다.
더구나 내 상급 학교 진학 문제로 많은 걱정을 하신 아버지는 이미 서울에 올라가 계셨는데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는 시골에 있는 가족을 위해 돈을 부치셨고, 나는 글을 모르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돈을 잘 받았다는 편지를 아버지께 썼다. '아버님전 상서'라는 연극 광고가 거리에 나부끼던 지난 해 나는 예전 아버지께 편지를 쓰던 어린 나를 떠올리며 회상에 젖었었다.
아버지는 그 후 일 년쯤 되는 날 우리를 다시 서울로 부른다. 우리는 서울 도봉동에 둥지를 튼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나는 서울 도봉 초등 학교 6학년 3반에 앉아 있다. 교감 선생님께서 낸 분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배정해 준 반이다. 그러나 중학교 입학을 위해 입시를 치러야 했던 시절, 나는 첫날은 저 꼴찌 자리에 앉았다. 배치고사를 치르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린 나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매일 매일이 시험 치르는 것이 일인 학교 생활, 나는 진학 바로 다음날 선생님 책상을 마주 대하고 앉는다. 비로소 내 자리를 찾은 듯하여 빙긋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빼빼 마르고 키만 훌쭉 큰, 얼굴엔 버즘자리가 희끗희끗한 말없는 아이다.
황성연 담임 선생님은 달리기만 하면 늘 꼴찌인 내게 체육 때문에 중학 입학 시험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며 혹독한 연습을 시킨다. 나는 아직 패배란 걸 모르는 나이였지만 어쨌든 그건 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나는 연습하고 또 연습하여 체육도 거의 만점 수준에 닿게 되었다.
놀 때는 잘 달리면서 왜 달리기라는 말이 붙으면 걸어가는 것 같으냐는 친구들의 우스개를 생각하면 선생님은 내게 있어 두고 두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은혜로운 분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숨이 조금 차기 시작한다.
나는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틈에 얌전히 앉아 있다. 가슴엔 이름표와 교표가 달려 있다.
J여중.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J여고. 그러나 아버지의 일은 다시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다.
게다가 내게는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하나가 있어 앞으로 한동안 목돈 들 일만 남아 있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가지 않고 취직하여 동생들 뒷바라지하기를 바라시지만 나는 공부를 향한
나를 꺾을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을 나중으로 미루면 어떻겠느냐는 아버지의 말씀은 나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내 성적은 깊이를 모르고 추락하여 첫 해 대학 시험에서 전후기 모두 낙방하고 만다.

이듬해 나는 모 대학에 합격을 하지만 등록금이 없어 입학를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권하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
다음해 공무원으로서 발령을 받고 H대학 영어 영문학과 야간부에 입학한다.
그러나 공부만을 하고 싶은 일념에 2년 반 가량의 공무원 생활을 접는다.
뾰족한 대안도 없이 말이다.

이제 숨을 조금 조절해야 할 시간이 되어간다.
나는 호국단 문예부 차장을 거쳐 문예부장을 지내면서 고등 학교 때 우리 학교 선배 시인으로부터 지도 받던 문예부 시간을 떠올린다.
조금 더 지도를 받아두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그리 만족한 건 아니었지만 사각모를 쓰고 사진을 찍고 나니 나는 작은 출판사 편집부 말석에 앉아 있게 된다.
그리고 세계 문학 전집과 우리 문학 등을 월급을 받으면서 읽을 수 있는 출판사 일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로라 하는 출판사 등을 거치면서 문교부에 검인정 교과서 중 국어 교과서가 통과되는데 그건 내가 출판사 일을 한 중에 가장 보람된 일 중의 하나이다.

나는 틈틈이 잡문을 쓰기도 하고 몸이 아파 쉬는 동안 동인회에 가입도 하면서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다가 어느 신문 독자란에 올린 내 시조를 본 한 남자의 편지를 받은 후 바로 사랑에 빠진다.
나는 그에게 내가 글이란 걸 쓴답시고 다른 데 기웃거리지 않게 잘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그러마고 약속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 없이는 안 될 일이었기에 나는 글보다는 고통 없는 삶을 택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온몸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난다.
굳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서른의 나이에 만난 남자가 날마다 쫓아다니며 구애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직 혼자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으로 얻은 두 딸과 아니 그 이전에 두 딸의 아빠가 되어 준 사람이 있음으로 결혼과 함께 내가 정말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얻은 것은 잃은 것보다 수 백 배는 되리라는 만족감을 갖는다. 더구나 여러 잔병치레와 수 차례의 수술 그리고 때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로 인해 사경을 헤맬 때 내 곁에 있어 준 가족 특히 남편에게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걸음을 조금 더 늦추자 차츰 땀이 식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제 많이 커서 내 손길을 일일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편은 이제부터야말로 당신의 일을 찾아야 할 때라는 말로 그 동안 집안일과 남편 그리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나를 버리고 산 시간을 보상해 주려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작년에도 심한 아픔에 시달렸으며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제는 이따금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편집 교정 일을 거절해야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으니 글 좋아라 하며 쫓아다니던 시절까지 한 스무 해는 되돌아 가 죽은 듯이 남의 글을 읽고 습작을 하며 노력하는 수밖에 없음을 안다.
오늘도 내일도 열매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어떤 인자를 불러 일으켜 꽃 피우고 수정시키는 데 있을 뿐이다.

오늘 뉴스도 온통 뉴욕에서 자행된 자살 테러 사건에 관한 것이다.
내 아는 이들이 연관되어 있지 않아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너 그리고 나의 숨결이 흥분된 채 아직 일렁이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자리에 앉기 전에 어서 가 씻어야겠다.
내일 다시 같은 땀을 흘릴지라도 이 땀방울 역시 오늘 버려야 내일 새 땀방울로 교체될 것이기에.

삶은 런닝 머신 위의 끝없는 달리기란 생각이다. 나의 글공부 또한 그러하리란 생각이다.
나는 내가 학업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내가 졸업한 대학을 이력서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밝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또한 내 본모습임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함께 수필을 공부하기로 한 모듬 식구들에게 알리고 나니 내가 꽤나 용기 있는 사람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리하여 이제 영어 이니셜로 바꾸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내가 원하던 대학, 내가 바라는 환경과 가지고 싶었던 것 그리고 건강을 하나도 빠짐없이 누리고 있다면 아마 나는 글쓰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접으며 나는 슬며시 리모콘의 파워 기능을 누른다.
고통을 통해 얻어지는 보석과도 같은 글을 얻느니 고통 없는 평범한 삶을 살다 가려던 내 생각에
수정을 해야 할 시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고통을 멀리 하려던 그 순간 이미 고통과 손을 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바로 지금 내 머리를 스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달리기를 접고 나만의 시간을 나만의 색으로 칠할 준비에 들어간다.


두 번째 예문 <나/장미>는상당히 긴 글입니다만 조금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전개는 영화 '박하사탕'을 연상시킵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가며 지난 일을 말합니다.
그는 런닝머신이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앞으로 뛰어가면서 이야기는 과거로 역행하는 기술법을 씁니다. 그냥 놔두면 타임머신이라도 타서 돌아오지 못할 과거로 아주 돌아가 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까요?

여하튼 전개형식도 좀 색다르지만 구성의 방법도 평범하진 않습니다.
그는 마무리에서 '삶은 런닝머신 위의 끝없는 달리기'요,
고통이 따르는 글쓰기 보다 편한 평범한 삶을 택한다고 했지만
고통을 멀리 하려던 그 순간에 이미 고통과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두 예문 모두 작가적 욕망이 큰 사람들이고, 또 그만큼 상당한 습작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수필이 '나'라는 인생이기에 주제를 '나'로 주었었고, 거기에 대한 답으로 씨어진 동일 주제의 글인만큼 두 예문을 비교해 볼 수 있겠는데 둘 다 자신의 세계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매우 당황합니다.
위의 두 편 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까?

수필이 되는 대상은 자기 마음속에 담겨있는 모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을 관조(觀照)해 보며,
내가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 실체를 찾아내면 바로 그것이 내가 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쓸 것에 대해 어떻게 쓸 것인가는 나름대로, 곧 자기 방식대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 자기의 내심을 조용한 마음으로 방관하고 관조한 나머지 조용히 붓을 들 때 그 수필에는 작자의 독특한 인생의 향취와 내용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이 있고, 마음의 경지인 심경의 철학이 있을 것이다.'[<교양문학원론>(1991.창문각) 203쪽 수필의 특질 중]고 한 것 처럼 수필은 결국 진주조개가 진주를 아몰리는 것처럼 자기와의 부단한 싸움이요 승화여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