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교실(최원현 강의)

제19강] 좋은 수필을 위하여 - 읽고 싶어지는 수필(정리2)

방울꽃 2007. 11. 24. 21:38
제19강] 좋은 수필을 위하여 - 읽고 싶어지는 수필(정리)


[마무리] 읽고 싶어지는 수필을 쓰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필이 무엇이며, 무엇을 쓸 것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 이거구나!' 하고 생각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만큼 수필 쓰기는 손에 꽉 잡히는 수필작법이 있는 것도 아니요, 수필의 모범이나 정형도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수필과 또 많은 수필가들의 체험에 의한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식의 수필작법을 맛보기 함으로서 나는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방향감각을 어림으로나마 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 몇 가지를 함께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강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수필을 쓴다는 것이 나 혼자만 보거나 간직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며 결국 '쓰기'란 독자를 의식하고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씌어진 수필을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읽고 싶어지는 수필, 읽혀지는 수필을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러면 어떤 수필이 읽고 싶고, 읽혀지는 수필일까요?

첫째, 읽을 맛, 그리고 읽은 후의 맛이 있는 수필이어야 합니다.

수필 속의 정서가 읽는 이(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작가의 수준과 독자의 수준이 꼭 같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문장입니다. 수필은 결국 자기의 얘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진실하고 솔직하며, 간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장은 읽는 이에게 뒷맛을 느끼게 하는 감칠맛이 있어야 합니다. 걸림이 없고, 구체적이며 확실하여 작가의 말하려는 바가 정확히 전달되며, 진실하고 솔직하여 읽는 이에게 신뢰감을 주며, 문장에 기교가 있어 읽을 맛이 솔솔 풍겨나야 합니다. 그것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은근한 친화력입니다. 수필의 문장은 그런 은근한 친화력이 있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 읽을 맛, 읽고 난 후에도 읽은 맛이 남게 됩니다.

둘째, 읽을 사람이 읽고 싶어 하는 수필이어야 합니다.

독자에게 맞추어서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독자를 의식하고 써야 하는 것은 공통된 사항일 것입니다.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가 제각기 수용하고 원하는 경향은 다 다를 것입니다. 나이는 곧 그가 살아온 삶의 시대와 환경을 대변합니다. 결국 서로 다른 환경과 분위기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재미가 있고, 철학이 있으며, 익살과 풍자와 기지가 넘치는 수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독자가 읽고싶어 하는 수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정서가 어디에 가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관심사를 소재로, 주제로 삼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사도 시대적인 산물일 수 있습니다. 문학에는 보편성과 개별성이 있습니다. 개별성은 시대를 잘 반영하지만 보편성은 그것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수필문학 또한 이러한 개별성과 보편성을 적당히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성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작가에게 기대를 합니다. 그 기대를 안고 책을 폅니다. '슬프게, 즐겁게 해 달라거나, 울고 싶게 해 주거나, 꿈을 갖게 해 달라 등 요구를 해 오기도 합니다. 그 요구가 바로 기대입니다. 그렇다고 이 모두를 다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글이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최소한 그 중 한 가지라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글을 씁니다. 여기서 독자의 만족은 작가의 만족이 됩니다. 작가의 내면에 담겨있거나 숨어 있던 생각과 체험과 상상들이 문장화되어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독자는 타인입니다. 자신을 그려낸 글이 타인에게로 스며들어 감동으로 전해지고 그 감동이 작가의 것이 되어줄 때 작가의 글은 독자의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글을 독자는 읽고싶어 하고, 그걸 읽었을 때 읽은 맛(여운이나 감동으로)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글 쓴 이와 읽는 이의 관계

쓰는 이는 생산자 곧 공급자요, 읽는 이는 소비자 곧 수요자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필에선 생산자와 소비자, 공급자와 수요자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삶은 때로 대동소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누군가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썼는데 그것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공감이 아니라 그건 그냥 내 이야기를 어느 누가 쓴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필은 그것으로 하여 읽는 이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쓴 내 이야기를 내가 지금 읽고 있는데 어찌 감동이 없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자기는 상상도 못할 일을 수필을 통해 읽었을 때의 감동 또한 큽니다. 수필은 오직 나 하나만이 쓸 수 있는 오직 나만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이야기이든 그것이 문장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감동의 차이는 현격하기 때문입니다. 표현상의 어려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난해한 문장이 글의 품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의 정신 수준에 맞추는 보편성을 지녀야 합니다. 독자는 아주 냉엄합니다. 쉽게 찾아와 주지도 않지만 왔다가 너무나 쉽게 떠나 버립니다. 글 쓰기의 어려움이 여기 있습니다. 독자가 없는 글은 결코 살아있는 글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4. 독자는 손에 든 뜨거운 감자 같습니다.

너무 독자를 의식하고 독자의 취향이나 구미에만 맞추다 보면 잡문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문학성을 강조하여 품격을 높이다 보면 독자가 와 주지도 않습니다. 글의 품위도 지니고, 독자 없는 수필의 쓸쓸함도 아니 되게 하는 기술이 수필가에게 필요합니다. 독자를 의식치 않을 수도 없고, 너무 독자를 많이 의식해도 안 되는 것, 그러나 어떤 것이 참으로 독자를 위한 길인가를 깊고 넓게 생각하는 수필가가 독자를 위한 수필의 길을 가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